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줄거리,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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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신작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읽었다.
일간 이슬아에 연재된 소설을 책으로 엮었다.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가부장 시대에 대한 대안 소설. 새로운 질서의 모색이다.
가녀장의 시대 줄거리
이슬아를 모델로 삼은 작중 주인공 슬아는
자신이 세운 낮잠 출판사에
복희와 웅이를 취직시키고 월급을 준다.
휴가와 보너스도 있다.
복희와 웅이는 슬아의 어머니와 아버지.
작중에선 모부 라고 지칭된다.
부모도 아니고 어머니 아버지도 아닌 모부.
가녀장 슬아는 글을 연재하고 어린이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글쓰기 강연을 하고 책을 출판하고 기고하고
티비 패널로 참여하면서 매우 바쁘게 돈을 벌고
복희는 부엌에서 밥을 책임지고
웅이는 청소를 비롯하여 집 수리, 운전기사 등 비서 같은 역할을 한다. 가녀장의 시대.
복희 월급은 웅이의 두 배. 이유는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에 월급을 지급하여 이를 인정한다.
모부는 업무시간엔 대표님에게 존대한다.
슬아가 산 건물 지하에 안방이 있다.
채광 좋은 3,4층은 슬아의 작업실과 방.
그야말로 가녀장의 시대.
이 책은 이런 기본 질서 아래에서
슬아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일상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느낀 점
1.
기존의 낡은 가부장제 질서에 대한 대안적인 모습으로
가녀장의 사회를 그렸다는데, 나는 읽으면서 이 책이 소설인지 아니면 저자의 에세이인지 좀 헷갈렸다.
아마도 경험 70%에 30% 정도 가공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 저자의 이야기 100%를 쓴 것이라고 해도 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슬아 작가라면 이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
디테일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실제로 가능한 삶의 방식이고 실제 운동선수나 연예인 뒷바라지하는 부모들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문제는 동거하는 부모에게 월급을 줄만큼 돈잘버는 자녀+ 돈을 잘 벌면서 가사노동하는 부모에게 월급을 줄 생각을 하는 자녀가 많지 않다는 것. 아니 거의 없다는 것. 생활비 정도 드리는 가정은 꽤 있겠지만. 사랑도 돈도 아래를 향하고, 그게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세대는 가난하여 제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다.
가녀장의 시대란 결국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 그중에서도 딸이 매우 돈을 잘 벌면서 부모에게 통상월급 이상의 돈을 드리는 시대이고, 이는 가끔 나타나는 특이현상이 될 수는 있어도 시대라는 이름을 붙여서 언젠가 오기를 기다릴만한 성질의 것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속에서도 가녀장 권위의 밑바탕에는 슬아가 내미는 카드나 월급이 있다. 결국 관계를 결정하는 핵심은 말이 아니라 돈에 있다.
그래서인지 부자 슬아와 함께 일하는 가난한 모부, 이 그림에서 어떤 이질감을 찾기 어려웠고 크게 느낀바도 없었다. 자본주의가 가족 속으로 들어왔고 사장이 딸이며, 다행히도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돈으로 보상해주는 딸이었을 뿐이다.
가녀장의 시대라는 네이밍 센스에서 작가의 마케팅 솜씨를 볼 수 있었다.
2.
이 책에서 가녀장 구조보다 좋았던 건
책을 통해 엿본 작가의 삶이었다.
작가의 일상, 창작자의 고뇌, 성실함, 스트레스 같은 것들. 그리고 이슬아 작가는 글을 잘 써서 술술 읽힌다.
3.
책 속의 문장들
요가와 스쿼트를 한 뒤 잠시 책을 읽는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아침을 보내는 사람은 이 집에서 슬아뿐이다. 61p
“오십대는 나밖에 없더라. 다 젊고 예뻐.”
슬아가 원고 마감을 하며 대답한다.
“걔네들도 나중에 늙을 거야.”
112p
세상은 부를 타고 나지 않은 서민이 빚을 지지 않을 도리가 없게끔 굴러간다.
114p
“잘하고 싶은 일로 괴로우면 그나마 낫잖아. 119p
“폴 발레리가 그랬어요.”
복희는 폴 발레리가 누군지 모르지만 묻는다.
“뭐라고 했는데요?”
“작품을 완성할 수는 없대요.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래요……”
모든 작품이 체력과 시간과 돈 등의 한계로 어느 순간 작가가 포기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슬아의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복희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156p
다만 자신의 수고가 바람처럼 날아가는 것 같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식사는 언제나 휘리릭 끝나버리고 만다. 하루이틀만 지나도 오늘 차린 밥상 같은 건 슬아나 웅이나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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